Essays2012. 3. 14. 02:18
요즘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성향을 보여주는 앱 서비스가 나름 페이스북 이용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하루에도 4~5개의 성향 분석결과가 타임라인에서 꾸준히 노출되고 있다.

그간 나도 호기심에 이런 저런 앱들을 돌려 나온 결과를 포스팅하기도 했다.

내가 살게 될 집의 형태라든지(다리 밑) 

자신이 받게 될 가장 최고의 선물(종이 전투 비행기)이라든지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그래프 곡선(안 함)이라든가 

이름 석자에 담긴 의미 따위(외향적이다)

또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품평(당신이 없었다면 세상은 더 아름다웠을 것)까지.





그런데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너도 나도 올리는 앱 분석 결과를 보면 

하나같이 정상(?)인 것들이 거의 없다.

분석 결과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이런 앱들이 작동하는 원리가 타임라인에 낱낱이 기록된 이용자들의 글과 사진에 기반하는 것이 아닌

그저 개발자가 미리 정해놓은 결과 중 아무거나 하나 무작위로 고르게 하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럴거다.
(분석중이란 status 애니메이션은 그냥 일종의 눈속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일단 비주얼이라도 그럴듯하게 보여야지) 

하지만 난 이용자를 개떡같이 보는 앱들의 발칙하고 엉터리같은 작동원리엔 별 관심없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그런 앱들이 보여주는 '자기 스토리텔링 기능'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자신에 대해 무언가 할 얘기거리가 생겼다는 게 중요한 거다.

그렇다. 자기 스토리텔링 소스말이다.

이용자를 엿먹이는 황당한 결과가 능청맞게 스크린에 뿌려져도

일단 그 결과를 포스팅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댓글 잔치가 벌어진다.

앱이 보여주는 결과가 자신의 성향과 얼마나 일치하는 지 여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엉뚱하고 재밌는 결과에 대해 페북 친구들이 댓글로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운다는 게 핵심인 거다. 

오히려 결과가 황당하고 민망할수록, 망신살이 뻗칠수록, 심지어 실제 성향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많은 페북 친구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다. 댓글이 죽죽 달리면 이용자는 신이 난다. 자신의 이야기가 먹힌 탓이다.

자신의 망가진 이미지를 되려 자랑스럽게 드러내도 이용자 스스로가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생겼다는데 오는 일종의 기쁨 때문이 아닐까.
이야기거리가 생기면 발언하는 게 정상이다. 

그걸로 자신의 타임라인이 조금이나마 풍성해졌다면 이용자들은 정서적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현대인은 입이 고프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자신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A4 용지 한장 주면 글쎄, 한페이지라도 채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밑천이 없어서다. 대한민국 사람은 태어나면서 하도 남들 따라하는대로 정신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통에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그렇게 많이 갖질 못했다.

악착같이 살아서 결국 물질적 사회적 지위는 남 부럽지 않게 성취했을 진 몰라도 내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내 정체는 누구인지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거다. 

그냥 남들이 사회에서 불러주는 여러 타이틀에 의지해서 그때 그때 땜빵하듯 정의할 뿐 심각하게 자신을 성찰해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 이거다.

그러니 자신만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고픈 주둥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억지 끼워맞추기 같지만 이런 앱들이 등장한 배경에는 단순히 재미와 참여에 대한 욕구도 있지만 자기 이야기를 하고픈 현대인의 심리도 일부분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설령 저런 앱들이 엉터리 점괘같은 돌팔이 진단을 내려도 일단 그거로라도 나 자신을 포장하고 싶은거다. 물론 나 스스로를 꿰뚫어보는 건강한 성찰과는 거리가 먼 아스피린 같은 거지만.






뭘 그렇게 어렵게 썼어요. 그냥 재미로 해봤어요 라고 말하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래도 A4 용지 한장 채울 이야기도 없는 싱거운 현대인은 여전히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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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eHob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