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2012. 2. 3. 12:33






By the hobbit






작년 5월 시청 앞 광장 잔디밭에서의 어느 한 날.

그날따라 유난히 새파란 하늘과 뜨거운 햇볕이 사정없이 쏟아지던 한 낮에

온 몸에 온통 핑크빛 바디페인팅을 하고 나들이 나온 시민들 틈 바구니를 휘저으며 기이한 행각을 벌이는 한 무리가 눈에 띈다.

구경나온 시민들의 신기해하는 얼굴 하나 하나를 마치 '외계인'보듯 구석 구석 훑어 보는 이 이상한 손님들. 

허락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소지품을 가로채 '그들의 방식'으로 소화해내는 이 발칙한 대담함.

지나가는 차들 앞에 난입해 마치 풍차와 결투라도 벌이듯 자세를 취하고 두 팔을 흐느적거리다

급기야는 차 운전자까지 운전석에서 몰아내는 만행도 저지르고

가끔씩 남녀 구분없이 아무한테나 기습 키스를 감행하는 등 그들 나름대로의 기쁜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들이 만진 모든 꽃과 입맞춤한 모든 사람의 코와 뺨엔 핑크빛 흔적이 묻어난다.

핑크외계인에겐 여기가 바로 신세계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난생 처음 보는 이 희한한 광경에 온 몸과 오감(외계인이니까 그 이상일지도)으로 열렬하게 반응한다.

이 낯선 행성이 그들에겐 곧 놀이터이자 신나는 장난감 백화점인 것.





지구인인 우리가 보기에 우스꽝스럽고 불필요하게 과장된 그들의 몸짓엔 '신세계 지구'에 대한 경이감을 넘어선 경외감이 번져있다.

우리 지구인에겐 1년 365일이 똑같은 지겨운 일상들은 핑크 외계인의 호기심 넘치는 초롱초롱한 눈과 발칙해 보이는 짖꿏은 장난에 '어떤 특별한 무언가'로 바뀐다.

기존의 인간의 상식과 그 합리성과는 훨씬 동떨어져 원래의 용도와 효용들이 죄다 사라진들 그게 무슨 상관. 

그들에겐 낯선 행성에서의 하루를 신나게 보낼 수 있는 쓸모있는 장난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 않은가.

지구인들이 잃어버린 또 다른 어떤 시선. 도무지 주변을 낯설게 보지 못하고 상식과 이성에 익숙해져 버린 눈알들.

수천 수만번을 쉽게 스쳐가는 평범함을 갖가지 특별함으로 끌어올리는 재주를 핑크 외계인들이 용케도 간직하고 있다.

마치 그들이 지구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거 같다. 지구엔 정말로 재밌는 장난감이 꽉들어차 도무지 심심할 틈을 찾을 수 없는 신나는 곳이라고.
 
창의성은 관찰과 놀이를 벌이는 중에 예기치 않게 튀어 나오는가 보다.

세상을 무지개색 놀이터로 만들어 내는 힘.

 

 




"The INVASION"(non-verbal performance)<2011 하이 서울 페스티벌>
http://www.ljud.si
http://vimeo.com/30012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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